아름다움
아름다움이란 “존재의 존재에 대한 일치, 어울림, 연합”(consent, agreement, union of being to being)이다(J. Edwards, The Nature of True Virtue). 즉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의 사이에서 이런 조건을 갖출 때 그 사물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두 사물 사이의 한정된 관계 안에서만 아름다울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들의 관계 안에서도 서로 간에 충돌 없이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이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향한 일치, 어울림, 연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참된 아름다움이다.
  1. 아름다움의 요소: 아름다움은 ‘개별적 사물의 완전성’과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이라는 두 조건이 필요하다. ①개별적 사물의 완전성.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보편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미학적 목적에 기여하기에 충분한, 개별적 사물들 안에 있는 존재의 완전성이다. 사물이 그 자신을 그 존재가 되게 하는 ‘있음’(esse)으로 가득한 상태, 곧 전일성(全一性, integritas)으로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사물을 지으신 상태와 조건에 부합할 때 성취된다. ②보편적 질서의 완전성. 개별적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안에서 가지는 질서의 완전성이다. 이 질서의 완전성은 조화, 균형, 절제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 만물은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자신의 위치에 있을 때 자신의 고유한 작용을 함으로써 다른 존재들의 작용과 어울려 피조세계 안에서 아름다움을 이룬다. 그런 의미로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은 ‘위치의 완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학적으로 ‘추함’은 ‘조화로운 위치 혹은 질서로부터의 이탈’이다.
  2. 아름다움의 분류: ①원형적(=원천적)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이 아름다움은 원천적이고 독립적이며 무한한 아름다움이다. ②모형적(=파생적) 아름다움. 피조 세계에 투영된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서 원형적 아름다움을 본뜬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움은 파생적이고, 의존적이며, 한정적인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다시 ‘도덕적 아름다움’(=일차적, 혹은 상위의 아름다움)과 ‘자연적 아름다움’(=이차적, 혹은 하위의 아름다움)으로 나눠진다. 도덕적 아름다움은 지성적 존재인 도덕적 피조물의 영적인 아름다움을 일컫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일치, 어울림, 연합을 가리킨다. 이는 판단 능력과 사랑의 성향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나는 참된 미덕이다. 자연적 아름다움은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지정하신 자연적 사물의 법칙(혹은 인간의 본성과 양심)을 따르는 아름다움으로서 조화와 균정, 비율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자연적 아름다움은 도덕적 아름다움의 가시적 모상이다.
  3. 아름다움의 경험: 원형적 아름다움은 모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심미되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하고 파편적이다. 둘 사이를 연결 짓는 일에 있어서 인간이 지닌 무능함과 오류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심미 속에서 한정적으로 행복을 느낀다. 이처럼 모든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은 원천이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그 아름다움을 보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원형적 아름다움을 바르게 유추할 수는 없다. 원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은 중생을 통해 부여받는 ‘영적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질서 안에서, 혹은 질서를 초월하여 심미될 수 있는데, 신자들이 경험하는 원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아름다움’(=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에 대한 경험일 것이다.
  4. 하나님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개별적 위격의 완전성. 삼위 하나님의 무한히 완전하심으로 인하여 각 위격도 무한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각 위격은 다른 위격에게 사랑을 받는다. ②위격적 질서의 완전성.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의 세 위격이다.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는 하나 됨을 이루신다(consubstantiality). 세 위격 사이에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완전한 질서가 있다. 경륜의 측면에서는 서로 구별되게 일하시나 세 위격이 고유하게, 그러나 서로 교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펼치신다. 이때 나타나는 각 위격의 고유함은 그 위격의 다름이 되고 세 위격의 다름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룬다.

cf.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24-26;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95-100;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8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