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총괄갱신’으로 번역되는 ‘recapitulation’을 필자는 ‘머리되심’으로 번역한다. 이는 우리말 성경에서 “통일되게 하려…”(엡 1:10)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ἀνακεφαλαιόω)는 “다시 머리되게 하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본 교부 크리소스톰(Chrysostom, Homily on Ephesians, 1.1.10)의 해석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머리되심은 그분의 신분 상태에 따라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①성육신하기 전의 그리스도(Christos asarkos)의 창조의 머리되심. ②성육신하신 그리스도(Christos sarkos)의 구속과 교회의 머리되심. ③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Christos anabatos)의 완성된 세계의 머리되심. 세 번째로 언급된 ‘완성된 세계의 머리되심’은 특별히 ‘다시 머리되심’(recapitulation)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창조 때에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 되었던 그 관계로 회복하여 다시 돌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창조·구속·완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창조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성부께서는 천상과 지상의 두 세계를 영원한 지혜이신 성자를 통하여, 영원한 사랑이신 성령 안에서 창조하셨다. 특별히 삼위 하나님의 모든 지혜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의 중보자가 되시는데,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씨앗처럼 담겨 있어서 창조를 통해 하나씩 펼쳐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의 중보자, 곧 창조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없이 지은 바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창 1:1, 요 1:3). 2. 구속과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①구속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구속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흩어진 만물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구속의 중보자로 이 땅에 오셨다(갈 3:20, 딤전 2:5, 히 8:6). 성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양자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가장 적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씨앗으로서 창조에 관여하셨던 것처럼 구속의 모든 계획의 씨앗으로서 구속 사역을 수행하셔야만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구속의 지혜가 일치를 이룰 수 있었다(고전 1:21, 24, 2:7).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죄는 무한히 크기 때문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로 구원받을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셨다(롬 8:4). 하나님은 그 속죄의 공로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으며, 그리스도께 접붙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명적 교제를 나누며 살게 하셨다(요 3:16, 5:26, 요일 1:3). ②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토대로 성령께서는 개개인을 회심시키심으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접붙이시며, 이를 통해 그분의 몸 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가신다(롬 11:17, 19, 23). 곧 교회의 확장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 되심을 위한 것이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는 다음의 세 가지 지평으로 설명이 된다. 첫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신자들의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가 되시는데 우리 영혼을 살게 하는 영적 힘과 은혜와 생명이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지기 때문이다(엡 1:23, 4:12-16).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기체적 통치’의 머리가 되신다. 성령과 말씀 안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는 가운데 다양한 교회 구성원들은 하나 됨을 이룬다(히 10:21, 엡 4:3). 주님이 주신 사랑의 질서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며 주 앞에서 살아가게 된다. 셋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기체적 섬김의 머리’가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더라면 계속하셨을 그 섬김들을 공동체적으로 뒤잇는 것이다. 그분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고 있는 신자라면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기꺼이 섬기는 자로 서야 한다. 3. 만물의 다시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종말의 세계 완성, 우주적 재창조의 머리 되심): 교회의 완성 이후 그리스도가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 두 세계를 통합하는 가운데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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