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떤 대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정하고, 그것에서 끊임없이 즐거움을 누리려는 영혼과 마음의 움직임이다.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교통의 본질이 사랑이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의 원인이자 목적이며 주체가 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충족적’(self-sufficient) 사랑이다. 하나님 자신에 의한, 하나님 자신을 위한, 하나님 자신만의 사랑이며, 이는 다른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분이 아니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기 충족적 사랑은 인간과 만물을 향한 사랑을 포함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온 우주를 휘돌아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회귀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인간에게는 한없는 사랑이 되고, 만물에게는 선의가 되는 것이니 모든 피조물은 그 사랑 안에서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사랑도 그 사랑 안에 있어야 마땅하나 거기서 벗어난 이기적인 사랑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본뜬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분류들을 살펴보자. 1. 아가페(agape)와 까리따스(caritas=至純愛):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아가페’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인간의 지순한 사랑을 ‘까리따스’라고 부른다. 아가페 사랑을 경험한 죄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목표로 정하고, 그분을 끊임없이 즐거워하며, 그분께 자신을 합치하려는 영혼과 마음의 움직임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신자 안에 있는 지순의 사랑, 곧 까리따스 사랑이다. 2. 교통애(amor socialis 혹은 caritas)와 단절애(amor privatus 혹은 사적인 사랑):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작품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De Genesi ad Litteram, 11.15.20)에서 나오는 용어이다. ‘교통애’는 하나님을 향한 일체의 이기심이 없는 지순애, 곧 까리따스(caritas) 사랑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대상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사랑을 의미한다. 반면,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 확장된 사적인 사랑을 ‘단절애’라고 부른다. 이 사랑은 만물의 질서와 판단 정립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에게 둔 사랑으로서 종국에는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는 사랑이다. 교통애에서 이탈한 모든 사랑이 여기에 해당되며,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자기 사랑이다. 3. 박애애(amor benevolentiae)와 목적애: ‘박애애’는 사랑받는 대상의 가치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주체이신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자비 때문에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대상이 가진 어떤 장점이나 유용성과는 상관없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향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반면, 사랑받는 대상이 가진 어떤 특성들이 자신에게는 아름답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을 ‘목적애’라고 부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1a2ae.26.4)에서 목적애를 ‘우정애’(amor amicitiae)와 ‘욕망애’(amor concupiscentiae)로 나눠 설명했으며, 박애애를 까리따스라고 불렀다. 4. 성향적 사랑과 심미적 사랑: ‘성향적 사랑’이란 자신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사랑하는 것이다. ‘박애애’가 여기에 속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심미적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신자들의 사랑도 이렇게 나눠질 수 있는데, 교회를 향한 사랑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아름다운 것이 매우 적은데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찾아내 사랑하는 것이 성향적 사랑이고, 교회의 영적 아름다움을 보고 교회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심미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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