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영광을 돌리게 하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8-19)
Ⅰ. 본문해설
사랑이 믿음을 만들어 내지는 않지만, 믿음은 사랑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 그분에 의해 제시된 구원의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절대의존의 믿음은 곧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의 나타남이다. 믿음과 함께 사랑은 시작되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 전체를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Ⅱ. 실패한 자를 부르심
A. 사명의 길을 주심
인간은 의미를 묻는 존재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발견하여야만 그는 참된 행복이 이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향을 믿는 자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주셨다. 이는 하나님께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고, 인간 모두에게는 그 목적을 찾아가는 성향이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심으로써 인간의 삶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그의 사명의 길을 보여주셨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스스로 띠 띤다’는 것은 자유롭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다녔음을 의미하고, ‘남이 띠 띠운다’는 것은 구속과 속박을 뜻한다.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이후에 일어날 베드로의 체포와 심문, 그의 죽음에 관한 예고이다.
사명은 우리의 옛 본성이 원하지 않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은 그 의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옛 본성이 아닌 새 본성에 적합한 일이다. 그래서 사명의 길은 오직 주님이 주신 은혜, 우리 안에 예수의 정신이 충만할 때에만 감당할 수 있다. 이는 그 길이 끊임없는 자기 부인의 길, 자기 죽음의 길, 십자가를 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은혜 안에 있을 때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기쁘지만, 은혜에서 멀어지면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여기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 길을 걸어간다. 그렇지만 그는 곧 그러한 삶에 기쁨도, 행복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소명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라는 그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감당할 수 있는 길임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B. 영광 돌리게 하심
요한은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의 핵심은 “죽음”이 아니라 “영광”에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혹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이것은 이 세상에서 잠시 겪는 일이고, 그 모든 일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드러나야 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상과 벌을 베푸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복음 선포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덕적인 삶, 경건한 생활을 보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고, 인간은 그 안에서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세상의 기준으로 잴 수 없는 인생의 성공의 비결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이사야는 이렇게 외친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우리가 주님을 몰랐더라면 이 세상에서 잠깐 살다가 허무하게 죽을 인생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주셨고, 들풀과 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를 위해 산 날은 하늘나라에서 기억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미력이나마 그분을 위해 산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C. 주님 따르게 하심
하나님의 위해 죽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지금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따르라는 것은 어떠한 장소에 따라오라는 것이 아니라 교훈적인 문제를 말한다. 베드로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살았던 삶, 주님이 가르쳤던 교훈을 따라 매일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Ⅲ. 결론
사명과 인생은 두루마리와 같다. 펼쳐지기 전까지는 거기에 무엇이 쓰였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지혜에 뛰어나고 모든 사랑에 탁월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창조하실 때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하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명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