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부부, 서로 괴롭게 하지 말라 (장년편)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5:24)
Ⅰ. 본문해설
부부가 적극적으로는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소극적으로는 서로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노년이 되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II. 서로 괴롭게 하지 말라
A. 괴롭게 하지 말라
여기서 ‘괴롭게 하다’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배려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비인격적인 무시와 억압이 여기에 해당된다. 과거 남편들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앞세워 아내를 괴롭히고 무시하였다. 이는 아내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지위는 일시적이다. 노년에 그는 자신이 행했던 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가족은 우리의 거울이다. 배우자의 얼굴에 외로움, 소외감, 우울, 미움 등이 가득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 정도의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자에게 헌신하지 못했던 것을 뉘우치라. 과거에 받은 상처를 복수하듯 배우자를 외롭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라.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B. 자기를 완성하라
한 인간의 인간성은 완성되는 데에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함으로써 함께 완성되어 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우리를 완성해 가시기 위해 불완전한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사랑하게 하셨다.
교회도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교회를 만나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향한 신자의 사랑이 진실한지를 시험하신다. 그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교회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교회를 배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의 아픔과 어려움에 동참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더 사랑하고 인내하여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누리며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간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다. 부부가 자신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를 어떻게 내어주셨는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아내는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긍휼은 사랑의 마지막 감정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아픔에 집중하지 말고 상대의 아픔으로 돌아볼 때 서로를 용납하게 된다.
따라서, 부부관계는 자기를 완성해 가는 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배우자를 끝까지 사랑하라.
C.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
배우자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대상이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여기서 “생명의 은혜”는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 누릴 영원한 생명이자 살아있는 동안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닌가. 그래서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기도가 막힌다. 함께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되어 있는데, 관계가 깨졌으니 그것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면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서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힘도 없다. 결국 관계를 포기하고 남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배우자와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자기의 인생이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다.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다. 배우자를 함부로 교정하려고 하지 말라. 관계가 파괴된다. 또한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잘 소통해야 한다.
III. 적용과 결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서로를 위해 부지런히 헌신하라. 그래서 인생을 마무리할 때 서로에게 “힘들고 어려웠어도 당신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손 꼭 잡고 주님 품으로 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