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아기 임마누엘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사 7:14-16)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2-23).
1. 이사야 7장 본문 배경
이사야서 7장의 배경은 주전 735년이다. 20세에 왕이 된 아하스는 아직 경험이 적고 우상 섬기기를 즐기는 패역한 왕이었다. 이런 내적 어려움에 더해, 외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세력을 떨치던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북방까지 점령하였다. 앗수르는 애굽을 점령하길 원했고, 그로 인해 그 사이에 있는 아람, 북이스라엘, 남유다는 멸망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연합군을 형성하였고, 남유다에게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항복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먼저 남유다를 치기로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하스와 백성들은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혔다(사 7:2). 그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 7:4). 여기서 ‘삼가다’는 ‘너의 자리를 지키라’는 의미다. 너의 삶의 자리를 지키고 요동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를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다.
2. 이사야 7장 속에서 임마누엘 이해
이사야는 약속을 확실케 하기 위한 증표로 징조를 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아하스는 구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너희가 하나님을 괴롭히려 한다’고 하는데(사 7:13), 원문으로 해석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다’는 뜻이다.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항복하기로 뜻을 세웠기 때문이다. 자기 방법이 좋아보였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것이다.
아하스가 징조를 거부하였어도 하나님께서는 징조를 주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사 7:14-16).
여기서 ‘처녀’로 번역된 단어 ‘알마’는 성적 경험이 없는 여성이 아니라 15-20세 사이의 결혼 적령기의 여성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가 자라 “선을 택할 때”, “엉긴 젖과 꿀을 먹을 때”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말씀하셨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 여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아 아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아하스의 아들 혹은 이사야의 아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1) 여인의 정체
유대인들은 선과 악을 구별할 나이는 12-15세로 보았다. 또 엉긴 젖을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이, 꿀을 먹을 수 있는 나이는 12세이다. 하나님은 그때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아이가 잉태되어 12살이 될 때, 곧 주전 722년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이라는 예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백성을 구원하시는 두 가지 방식을 본다. 첫째,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하심으로 구원하신다. 그것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통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 속에 들어오신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역사하신다. 아하스는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이가 태어나 12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신다. 그동안 아하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3. 마태복음 1장에서의 임마누엘
이 두 방식은 예수님께도 적용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신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미 창세기에 선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한 남자’가 올 것을 예고하셨다(창 3:15).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한 남자’가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성을 통해서 올 것을 예고한다(사 7:14). 그리고 이 예언은 마태복음 1장에서 여인은 ‘처녀’로, 구원의 증거는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로 구체화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보내시면서 그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다. 이사야서에서 아이는 하나의 표징이었고 하나님은 뒤에서 역사하셨다. 아이와 하나님은 구분되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 아이가 구원의 증거일 뿐 아니라 곧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둘째, 예수님은 30년이 지나서야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서야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순종하며 기다리셨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아무리 급하고 절박하더라도 서두르지 말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적용과 결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그로써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이 시대의 구원의 증거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한 우리의 가정은, 직장은,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시간을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한다. 내가 급하다고 하나님도 급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지 못하면 실패하게 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