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Ⅰ. 본문해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당신께로 돌아올 때 복을 주신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Ⅱ.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간의 경험하는 모든 문제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 이 생명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우리 영혼에 임하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온다.
A. 사랑, 경험, 지식
성경에 “지식”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창세기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히브리 성경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라고 기록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선악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곧 선악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성경에서 지식은 단순히 정보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단어는 ‘알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창 4:1). 여기에서 ‘동침하다’가 히브리어 성경은 ‘알다’를 뜻하는 단어이다.
‘아는 것’은 ‘경험하는 것’과 나뉘지 않고, 또한 이것은 ‘사랑하는 것’과도 나뉘지 않는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아는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곧 세상을 사랑하셨음을 뜻하는 것과 같다.
B. 이스라엘과 그 지식
인류의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향한 지식을 거두어가신 것으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거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아담의 후손들, 셋의 자손에게 희미하게나마 전수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 전해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심으신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하고 그것을 열방에 선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로 인해 모든 만민이 그 지식의 빛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일에 실패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않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한 결과였다.
C. 신약에서의 그 지식
신약의 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전환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요 1:18).
그러나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 지식도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그분의 부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분명히 알려졌다.
이 지식은 차가운 지식이 아니라 뜨거운 사랑으로 역사하는 지식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힘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인간관계의 고통까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을 다양한 고통을 경험한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은 그 모든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우리에게 다양한 문제가 많이 있으나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있음을 뜻한다.
Ⅲ.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지 아니하고는 곤고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빌 3:8). 그러나 이 지식은 그냥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힘써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고는 얻을 수도, 자신 안에서 유지할 수도 없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조명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