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사랑의 줄로 이끄신 하나님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호 11:4-7)
Ⅰ. 본문해설
이스라엘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육적으로는 번영하였으나 영적으로는 병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영혼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돌아오도록 설득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으며 우상을 숭배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어린 시절에 당신이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셨는지 말씀하신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호 11:4).
II. 사랑의 줄로 이끄신 하나님
A. 인격적인 사랑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품을 떠났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지 못하셨다. “사랑의 줄”로 이끄셨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호 11:4). 사랑의 줄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부드러운 줄이다. 그 줄이 짐승의 목에 매다는 거친 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줄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라는 표현과도 어울린다. 둘째는, 걸음마를 돕도록 고안된 줄이다. 사람을 묶는 줄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걸음마를 위해 붙잡는 줄이라는 해석은 “사람의 줄”이라는 표현과도 어울린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시던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강압적이지 않고 스스로 붙들고 걷게 하는 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마음을 설득하신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타락하여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알아듣도록 말씀하시고, 듣지 아니하면 들을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등에서 죄의 멍에를 벗겨주셨다. 불순종하자 그들에게 죄는 언제나 무거운 멍에가 되었다. 그들이 고통받을 때 부르짖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또한 뉘우치면 용서해 주셨다. 그들의 죄의 짐을 가볍게 해주셨다.
음란한 아내가 배반했어도 호세아 선지자는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마다 변함없이 사랑하고 용서해 주었다. 그 점에서 호세아는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무거운 죄의 멍에를 벗기시고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 우리가 현실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세상의 무게 때문이 아니다. 회개하지 않는 우리 영혼의 무게가 무거운 것이다. 죄의 멍에를 지고 힘겹게 노예처럼 살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이제 그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호 6: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호 11:4). 이는 밭 갈기 위해 종일 애쓴 가축에게서 멍에를 벗긴 후 먹을 것을 주는 농촌의 풍경이다. 소는 농사를 위해 멍에를 짊어졌으니 밭을 간 후에 양식을 먹을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했고, 불순종하여 멍에를 짊어졌으니 양식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멍에를 벗기시고 양식까지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돌아오는 자의 멍에를 벗기시고 안식을 주신다. 그리고 굶주린 영혼을 위해 말씀의 양식을 주셔서 다시 살게 하신다. 그러니 하나님께로 돌아와 말씀의 은혜를 받길 바란다.
B. 돌아오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호 11:5). 호세아는 영적으로 죽어 가는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육적으로 죽어 가던 이스라엘과 겹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았으며, 기적의 만나를 먹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애굽으로 향했으나 그곳은 그들의 목적지가 될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자가 세상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구원받았을 때 거기를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신흥 강국인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선지자는 목 놓아 우는 울음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외쳤던 것이다.
III. 적용과 결론
하나님께서 걸음마를 위해 줄을 잡아주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시면서 목 놓아 울며 부르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신자는 하나님을 떠나 죄의 멍에를 지고 살 때 행복할 수 없다. 눈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