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포도주를 거절하라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마 27:34)
Ⅰ. 본문해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주었다. 이것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한 행동이었다. 술은 어느 정도 고통을 잊게 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한 번 맛보고는 무엇인지 아셨다. 그 후에는 마시고자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통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모두 담당하길 원하셨다. 그것은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셨기 때문이다.
Ⅱ.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님
A. 고통을 담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십자가의 고난이 자신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그런데 막상 십자가의 고난이 앞에 있을 때는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거절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셨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쁜 것이지만 그 고통을 통해 온 인류를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부를 하나님의 계획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통제 효과가 있는 포도주를 거절하셨다.
요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거절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께서는 쏟아지는 피로 인하여 심한 두통과 목마름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에서 남기신 예수님의 다섯 번째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목마르다”(요 19:28). 그러자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얼굴에 대었다(요 19:29). 이것은 자비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얼굴을 포도주 범벅이 되게 하여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마저도 마시려 하지 않으셨다.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육체의 모든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십자가를 온전히 지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는 완전한 죽음이 필요했고, 완전한 평화를 위해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가 요구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고, 당신이 징계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아셨다(사 53:5). 그래서 이 결정적인 순간에 마취제로 당신의 고통을 감할 수 없으셨다.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부어지는 모든 고통을 감당하려 하셨던 것이다.
B. 제자의 삶
십자가에서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아주 작은 십자가 하나를 짊어질 때에도 그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를 찾는다. 고난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그 고난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압도되어 고난을 잊게 할 마취제를 끊임없이 찾는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내려놓고 다른 길로 가버린다. 그러면 그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생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고통을 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 고통 중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담대함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Ⅲ. 마취제를 거절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워주신 십자가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신앙의 길에 만나는 시련은 우리가 피해갈 수 있거나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는 십자가를 통해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하고,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십자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바라보는 자에게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수 있는 능력 또한 주신다. 이러한 사실을 믿어 일체의 마취제를 거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Ⅳ. 결론
모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을 애굽에서 누리는 모든 낙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의 신앙을 본받으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길 힘쓰라.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제는 내가 죽을 차례이다. 이 마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