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 9:27-29)
Ⅰ. 본문해설
산상수훈이 끝난 마태복음 8장 이후부터는 병자들을 고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그 이적 속에 담겨있는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이적적인 역사 아래에 깔려 있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병 고침의 기적적인 장면들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 반응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Ⅱ. 믿음을 기뻐하심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진실한 경외가 요구되었다. 그렇지만 그 경외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시대에 와서 경외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향해 가졌던 이 맹인들의 믿음을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한다.
A. 메시아에 대해
첫째로,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에게는 다윗의 자손 중에 메시아가 나와서 이스라엘을 의로 통치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다윗 왕국이 영원히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을 육적인 약속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해주실 분이 아니었다. 로마의 치하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번영케 할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맹인에게 있었던 메시아 사상도 당시 이스라엘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였던 그것과 다름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불완전한 지식도 기뻐하셨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신앙이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이다. 이제는 더 아상 나를 주인삼고 살지 않고 나의 인생 전체를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해주셨고, 지금도 우리의 삶을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져내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을 기뻐하신다.
B. 긍휼함에 대해
둘째로, 긍휼히 여기실 것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표현은 거지들이 동냥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이 맹인들은 일생 동안 많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박대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자비와 오래 참음, 그리고 긍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비는 슬픔 섞인 사랑이며, 오래 참음은 그 사랑을 배반한 사람들에게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긍휼은 죄로 말미암아 비참해진 상태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드문가? 어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도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긍휼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고, 그분을 의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그분을 섬기며 살 수 있었다.
C. 능력에 대해
셋째로,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 맹인이 눈을 뜨게 되는 것 등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본문의 두 맹인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자신의 인생을 던졌다.
Ⅲ. 결론
맹인들의 멸시받고 사람들에게 짓밟힌 삶이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주님을 만날 기회가 된다. 우리는 그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관건은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가, 자신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는가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고 주님을 간절히 찾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