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십자가로 돌아오라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요 19:33-35)
Ⅰ.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에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오후 3시경 죽으셨는데, 본문은 오후 3시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때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확실한 사실은 그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
Ⅱ. 예수 그리스도를 버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예언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 26:31).
무엇 때문이었는가? 왜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는가? 그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이라 말하였고, 죽는 데까지라도 따라가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마 26:33, 35).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고, 자신들도 권능을 받아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던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친히 경험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예수를 버린 것은 예수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주님의 은혜에 붙들려 있어야 신앙인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시는 이 십자가의 고난은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서운해 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의 고난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하나님 한 분만을 더욱 바라보았고, 그 속죄의 고난을 친히 감당하셨다.
Ⅲ. 십자가로 돌아온 제자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에 의해 쓰였다. 그러니 “이를 본 자”는 요한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과 십자가 아래 요한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요한 또한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엔가 요한의 양심은 강하게 요동쳤다. 선생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과 예수 홀로 고난당하도록 내버려둔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를 흔들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구경이 끝났다고 내려오는 골고다 언덕을 눈물을 흘리며 올라갈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고, 그 은혜가 불러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든다. 만약 그가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로마 군인들이 알았다면 그를 붙들어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경하던 무리가 그에게 비난과 멸시, 혹은 더 심한 행동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게 하였고,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돌아온 제자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 후에 온 우주를 통치하는 주가 되셨다. 그런 분이 육신의 어머니의 노후가 걱정되어서 당신의 제자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십자가 아래에서 죄책감에 울고 있는 제자를 바라보셨고, 그를 향한 당신의 마음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과 전혀 달라진 바가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시면서 요한의 마음에 있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당신이 여전히 요한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리신 것이다. “나는 내 육신의 어머니를 네게 부탁할 수 있으리만치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신뢰한단다.”
Ⅳ. 결론
신앙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순결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모든 신자가 때때로 넘어지고 쓰러진다. 때때로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러나 그때에도 다시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신다.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고 다시 주님 앞에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 같은 죄인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잠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따라 갔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기억하라.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다시 주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 주님과 기쁨을 나누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