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예수 죽으심에 돌아오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 19:38-42)
Ⅰ.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로, 네 복음서에 등장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록이다.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요셉은 이스라엘 종교 최고 회의체였던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워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눅 23:50). 또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 사람이었는데, 이는 당시 일반적인 유대교 신앙을 따르지 않고 순수한 구약 신앙을 따랐음을 보여준다(눅 15:43). 그는 부자였고(마 27:57), 더욱이 예수의 제자였다고 성경은 말한다(마 27:57).
Ⅱ. 자신의 정체를 숨김
그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실 때에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였음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였다. 공회원들의 비난과 의원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유대인들의 존경과 신망을 잃을 염려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였음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한 것이다. 예전에는 결단과 헌신이 있었지만 예수가 못 박히는 순간, 그는 예수의 열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랑에 머뭇거리며 실패를 경험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전에 받았던 은혜에 자만하지 말고 오늘 주시는 은혜에 붙들려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매일 십자가의 사랑으로 감화됨이 필요한 것이다.
Ⅲ. 십자가 죽음에 감화 받음
그렇지만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요셉의 태도는 변하였다.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하였을까? 성경은 “이 일 후에”라고 기록한다. 헬라어 성경은 이 구절을 “이 일들 후에”라고 복수형으로 기록하는데, 이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일어난 일련의 많은 사건들을 가리킨다. 이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는 예수의 죽음에 깊은 감화를 받았고, 변화되었다.
A. 용기
마가복음에 따르면 요셉은 “당돌히”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였는데(막 15:43), 이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 즉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였고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가 그가 살아났다고 할까 염려하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다면 요셉이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죽음에 감화를 받은 요셉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예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구하여 정성껏 장례를 치러주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처형당한 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신은 공동묘지에 두었는데, 이는 가족 묘지에 사형수의 시신을 안장하는 것이 가문의 큰 수치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 그 사형수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자기의 새 무덤에 두었다. 그는 일평생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인간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몸소 보여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예수의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 과정에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감추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장례를 치렀다.
모든 두려움의 근원은 잃어버릴 것에 대한 염려이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언제가 사라질 것들이다. 요셉은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었기에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였다. 한때 자신의 정체를 숨겼지만 그분의 죽음에 감화되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처럼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는 세상 사랑을 버리고 십자가 사건이 우리 마음속에서 새롭게 경험될 때 우리는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B. 헌신
니고데모와 요셉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하다. 그들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와 예수의 시신에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게 위해 향품을 사용하였는데, 이 향품의 양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존귀함을 표현하였다. 백 라트라는 30kg에 달하는 엄청난 양으로 니고데모와 요셉이 예수의 시신 앞에 엄청난 헌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예수의 덕으로 복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으나 본문은 복음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십자가 신앙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그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이다. 니고데모와 요셉이 한때 실패했으나 주님을 위해 자신의 최선을 것을 드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위로를 받게 된다. 예수의 제자로 존경받던 사람들도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불러 최선의 것으로 섬기게 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세상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죽으심을 기억하여 다시 그분을 향해 헌신하며 살길 바란다.
Ⅳ. 결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였으나 두려워 실패하였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 죽으심에 깊은 감화를 받은 후에는 잃어버릴지도 모를 모든 것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최선의 것을 니고데모와 함께 드려 그 사랑에 응답하였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라. 늘 십자가를 묵상하라. 그 십자가에 감화를 받아 용기 있고 헌신된 삶을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