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주님께 다 말씀드리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Ⅰ. 본문해설
본문은 널리 알려진 다윗의 탄원시다. 아마도 사울로부터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던 때이거나 왕이 된 후 압살롬의 반역으로 망명을 떠나던 때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시련을 당할 때 믿음으로 하나님 품으로 파고들었던 은혜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준다.
II. 주님께 다 말씀드리다
A. 여호와께 드린 기도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부른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고유한 본명이며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이후 계시된 존함이다(출 6:3). 시인은 시련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생각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 안에 있는 사람임을 기억한 것이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시간을 “아침”으로 특정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침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애굽을 탈출할 때 홍해가 갈라진 것도(출 14:21), 가나안 정복에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수 1:6), 기적의 양식인 만나가 내린 것도(출 16:13),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도(눅 24:22) 모두 아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슬픔에 잠들었을지라도 아침에는 은총이 깃든다고 믿었다.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나의 소리”는 발화하는 음성을 가리킨다. 이는 억제할 수 없는 마음의 정에서 터져 나오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시 5:2). 이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특별한 기도다. 시련 속에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때 기도는 말이 되어 터져 나온다. 평범한 시기에도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더욱이 특별한 위기나 어려움의 시기라면 그 이상의 기도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기도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특별한 상황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들으시리니”는 들리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파악하고 그대로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동작이다. 이는 율법의 선포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령이다(시 50:7, 사 7:13). 또한 이는 마치 사랑하는 엄마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애정 어린 동작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은 최고의 애정 표현이다. 시인은 시련 속에서 자기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그를 살린 것이다.
B. 주님께 다 털어놓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기도와 관련해서 말할 때 1인칭을 사용한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시 5:1),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5:2). “내가 주께 기도하고”(시 5:3). 성경은 개인기도의 중요성을 공동체 기도의 중요성과 함께 강조한다. 이는 개인기도라는 벽돌이 하나씩 쌓아올려지지 않고서는 결코 공동체적 기도라는 집이 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 개인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기도하는 교회를 만들지 못한다.
원어 성경에서 “기도하고”는 ‘나는 당신께 모두 털어놓을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아라크’라는 동사는 ‘배열하다’, ‘(밥상을)차리다’, ‘항오를 벌리다’라는 의미다. 마치 아이가 엄마 품에서 고자질하듯이 심정을 터놓는 기도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시인의 마음에 쌓인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주님께 쏟아놓고자 기도할 뜻을 세웠다.
마음이 곤고한 사람일수록 사연이 많다. 그 사연이 정신에서 소화되지 않으면 마음을 미끄러지게 하거나 병들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사연을 다 털어놓은 사람들은 응답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근심으로 굳은 마음을 녹이는 은혜를 주신다. 그것이 신자의 특권이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라는 표현이고 주님을 의지한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그분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위로를 바라지 말라.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싫증을 낼지라도, 주님은 불쌍히 여겨 모두 들어주신다. 주님께 당신의 사연을 낱낱이 아뢰길 바란다.
원어 성경에서 “바라리이다”는 ‘그리고 나는 밖을 쳐다볼 것이다’이다. 믿음의 눈으로 현실의 창밖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그분의 자녀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그분께만 기대어 희망을 갖는다는 뜻이다. 인생의 벼랑 끝에 서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마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것이다.
III. 적용과 결론
절망하는 당신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힘겹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밝은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지금 고요히 주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