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무너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지혜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12)
학대 받는 자의 눈물이 가득한 세상
이 세상에는 학대와 핍박, 눈물이 넘쳐난다. 이러한 세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학대하는 자에게는 권세가 있어 사람들이 점점 모이는데, 학대받는 자에게는 한 사람의 위로자도 없다는 것이다(전 4:1). 그래서 전도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더 낫고, 이 둘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고 말한다(전 4:2-3).
지금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학대와 핍박, 불공평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전도자는 무너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세 가지로 말한다.
한 손의 평온함
첫 번째 지혜는, ‘한 손의 평온함’이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 4:4).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어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그리고 나는 모든 수고와 일을 하는 모든 재주들이 그의 이웃을 시기하는 데서 온 것임을 보았도다.”
한글 성경은 내가 성공하니까 이웃들이 나를 시기한다는 의미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나온 결과가 나의 재주고 성공이라고 말한다. 전도자는 이러한 시기와 경쟁이 세상의 모든 학대와 고통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5절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전 4:5).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보면 이렇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팔을 붙들고 자기의 삶을 먹고 있느니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학대가 존재한다. 4절은 지나친 경쟁으로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장면을, 5절은 게으름으로 자기 육체를 뜯어먹는 자기 학대를 말한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전도자는 말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 4:6). 여기서 ‘나으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 곧, 행복이다. 슬픔 많은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한 손의 평온함’이다.
자기의 두 손을 가득 채우는 것은 시기와 경쟁, 질투로 약탈하는 인생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두 손을 채우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인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자의 삶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이다. 모두 불행한 인생이다.
전도자가 전하는 지혜는 자족과 균형이다. 나의 두 손을 다 채우려는 욕심은 시기와 약탈을 가져오고, 두 손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으려는 게으름은 자기 학대를 가져온다. 그래서 한 손은 가득하나 다른 한 손은 의도적으로 비유는 여유가 필요한다. 부지런히 일해서 한 손은 채우나 다른 한 손은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펴는 삶, 내려놓음과 신앙의 여유가 필요하다. 내 손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다.
행복한 노동
두 번째 지혜는, ‘행복한 노동’이다. 전도자는 함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 사람을 상정한다(전 4:6-7). 그에게는 부양 가족이 한 명도 없지만 두 손을 가득 채우려고 쉼 없이 일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불평한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을 놓지 못한다. 불행한 노고다(전 4:8).
전도자는 그의 수고가 불행한 이유를 혼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행복하려면 나의 노동이 누군가의 삶에 유익을 주어야 한다. 나만 만족하려고 일을 하면 탐욕이라는 수렁에 빠지고 말 것이다. 나의 수고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때, 그의 노동은 행복한 노동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 행복할 때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갈 때다. 성경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함께 그리고 나란히
세 번째 지혜는, ‘함께 그리고 나란히’다. 전도자는 홀로 있는 자의 삶에 대안으로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는데, 그 유익을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함께할 때 일의 성취도가 높아진다. 한 사람이 일할 때보다 두 사람이 함께하면 그날의 품삯이 더 많아진다(전 4:9). 둘째, 함께하면 좌절의 때에 일어설 수 있다. 인생의 좌절과 실패의 순간에 힘을 주는 동료는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전 4:9). 셋째, 위기의 순간에 맞서 싸울 수 있다(전 4:11-12). 인생의 차가운 밤이 찾아올 때 동료는 은혜의 체온으로 나를 데워주고, 고난의 때에 나와 함께 싸울 동료가 있다면 우리는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다.
눈물이 가득한 세상이다.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가장 큰 위로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신다. 어려울 때 함께 싸워주신다. 그래서 고난의 밤을 이길 방법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님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내가 어려울 때는 내 믿음의 동역자가 나에게 신앙의 체온을 나눠주고, 그가 쓰러질 때는 내가 위로자가 되어 그를 일으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다.
적용과 결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전도자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에나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고, 학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눈물 흘리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행복할 사명이 있다. 전도자는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전도자가 전하는 지혜를 따라 ‘한 손에 평온함’, ‘행복한 노동’, ‘함께 그리고 나란히’ 가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