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진리가 사랑을 잃을 때
진리가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욥 21:27-34)
사랑 없는 공의
욥기 20-21장에는 악인의 심판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난다. 소발은 악인이 심판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더 나아가 고난받는 사람은 모두 악인이라는 편협된 사고까지 드러낸다. 그러나 욥은 악인의 심판이라는 교리는 그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악인이 심판 받지 않을 때도, 의인이 고난받을 때도 있으니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악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악인의 당연한 심판: 소발
20장은 소발의 두 번째 말이고, 21장은 그에 대한 욥의 대답이다. 첫 번째 대화 사이클에서 친구들은 욥을 설득하려 하였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며. 그러나 두 번째 대화에서 친구들은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악인에 대한 당연한 심판의 결과이고 욥이 회개하지 않으니 더 큰 고난과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죄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인을 학대하신 결과,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1)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
소발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 친구 가운데 가장 단순한 사람으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나 논리적 설득 없이 고난당하는 욥은 죄인이라는 주장을 밀어붙이는데 20장의 소발은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다. 이는 욥이 19장 마지막에서 친구들을 향해 했던 칼의 경고 때문이다.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욥 19:29).
욥의 칼의 형벌에 대한 경고를 들은 소발은 조급한 마음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나 몹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이렇게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욥 20:2-3).
여기서 ‘조급하다’라는 것은 화가 나서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뜻이다. 소발은 이렇게 화난 상태에서 욥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다.
2) 욥의 과거에 대한 저주
소발은 욥이 과거에 누린 모든 부귀와 영화가 악인의 잠시의 풍요였고, 결국 지금 똥처럼 망하게 되었다고 조롱한다.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욥 20:5-7).
3) 욥의 미래에 대한 저주
소발의 말은 더욱 거칠어져 욥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영원히 멸망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며”(욥 20:8-9), “그의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욥 20:11).
그리고 욥이 이렇게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음이요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음이니라”(욥 20:19).
무너진 욥의 인생을 향한 소발의 저주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욥의 삶의 시간들마저 고통과 슬픔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저주한다. 그의 마음과 몸, 삶의 모든 터전이 하나님과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어 악인의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욥 20:20, 24-26).
욥의 마지막 희망은 지금은 고난당해도 후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발은 욥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는다. 하늘도 땅도 하나님도 욥의 고난이 그의 죄악의 결과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욥이 꿈꾸는 회복에는 희망은 없다고, 오히려 하늘과 땅의 심판이 남겨졌다는 것이다.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즉 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욥 20:27-29).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악인의 심판
이렇게 욥의 마지막 희망까지도 짓밟은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이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욥은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한다. 나를 좀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욥 21:2-3).
1) 지연된 악인의 심판
그리고 욥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심판받지 않은 악인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욥 21:7-13).
여전히 심판 받지 않고 살아가는 악인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욥은 악인의 심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욥 21:16).
욥도 악인들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악의 계획,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말한다. 곧 나는 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이론과 현실 사이의 차이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는 분명한 사실과 악인이 심판 받지 않고 사는 현실 속에서 욥과 친구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인다. 욥은 그의 앞에 일어나는 두 가지 현실을 이렇게 요약한다. 평안히 사는 악인도 있고 고난 당하는 의인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욥 21:23-25).
3) 하나님의 시간에 남겨진 심판
그리고 이제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는 현실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해결하려 노력한다.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욥 21:30).
악인이 심판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재난의 날까지 참으시는 것이고 그들의 삶은 그들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끌고 가시는 것이라고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 욥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의인은 회복의 날을 위해 남겨진 바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의 날을 향해 인도되어 간다는 것이다.
소발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의 시간이다. “너는 고난 받았어. 그러니 죄인이야.” 그러나 욥은 현재진행형으로 말한다. “나는 지금 고난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의인이야.”
욥은 이제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나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보면 여전히 하나님은 욥의 고난 안에서 일하고 계셨다. 고난이 끝난 것도 아니고 희망이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하나님은 선하신 뜻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맺음말
소발은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기에 모든 고난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발에게 부족한 것은 교리의 내용이 아니라 그 교리를 삶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고난당하는 자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없으니 모든 고난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죄인이라는 빠르고 단순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겔 18:23). 예수님께서도 멸망당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다(눅 19:41-42).
우리는 옳은 말을 많이 한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적인 권면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권면에 사랑이 없으면 소발의 말처럼 열매는 없고 생명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때 고난당하는 자들이 위로를 얻고 회복될 수 있다. 그러한 위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