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무명의 사명자들
무명의 사명자들(2026020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18-25)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경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신다. 때로는 ‘~하라’. ‘~하지 말라’라는 계명으로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시기도 하고, 성경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인생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의아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지대했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언약을 이루기 위해 요셉은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인물이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요셉의 말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는 마치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하나님은 요셉을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는 메시아의 아버지로 유명해진 삶이 아니라 오히려 무명의 삶을 살았다. 요셉은 하나님의 무명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침묵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그림자처럼 자신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통해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시대의 요셉들이 되어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나의 인생을 통해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그분의 그림자로, 무명의 삶을 살기를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셉의 사명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5명 등장한다. 이 중 우리가 주목할 사람은 세 사람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었던 아리마대 요셉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역할은 거의 유사하다. 이들은 모두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이 생존하도록, 주인공이 태어나도록, 주인공이 죽는 일에 돕는 자들로 나타난다.
먼저 구약의 요셉을 살펴보자. 그는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가는데 이는 야곱 족속이 흉년의 때에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었지만 메시아가 오는 길을 예비하고 그 생명의 통로였던 마리아를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무명의 사명자로 조용히 사라진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그러하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예수님이 죽으신 후 나타나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구원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구원사의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한 요셉이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무명의 삶을 살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비밀은 그의 이름에 담겨 있다.
요셉은 히브리어로 ‘요세프’인데 이는 ‘무언가를 추가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 동사 ‘야사프’의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요셉이라는 이름은 ‘추가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곧 주인공이 어떤 사명을 이루기 위해 추가로 돕는 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 요셉인 것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리 요셉과 아버지 요셉의 사명
야곱의 아들 요셉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이는 이들에게 주신 사명이 동일하였기 때문이다.
1) 꿈으로 시작된 사명
야곱의 아들 요셉과 아버지 요셉 모두 꿈을 통해 사명을 받는다. 먼저, 구약의 요셉은 아버지의 집에서 두 번의 꿈을 꾸었는데 이 꿈 안에는 그의 사명이 담겨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흉년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받았기에 곡식 단의 꿈을 꾸었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을 구원할 사명이 있었기에 애굽이라는 나라가 섬겼던 해와 달과 열한 별의 꿈을 꾸게 된다. 이는 요셉의 가족은 물론 요셉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될 것을 보여준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 37:6-9)
그런데 예수의 아버지 요셉도 꿈을 통해 사명을 받는다. 한 번은 정혼자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0-23)
두 번째 꿈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애굽으로 피신시킬 때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마 2:1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마 2:19-20)
2) 생존의 사명
두 요셉이 꿈을 통해 받은 사명은 모두 생존의 사명이었다. 총리 요셉은 이후 바로의 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아버지 요셉에게 주신 사명 역시 생존의 사명이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그녀와 약혼한 요셉은 이 사실을 알고 파혼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 사실을 공동체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파혼하려 한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성읍 사람들에게 돌로 맞아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신명기 22장). 그러면 아기 예수도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꿈을 통해 계시를 받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러한 생존의 사명은 두 번째 꿈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시키라고 명한다. 그리고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꿈을 통해 계시를 받고 요셉은 나사렛에서 정착한다.
3) 무명으로 사라짐
성경에서 두 요셉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주인공이 아니었다. 총리 요셉은 그의 이름으로 지파조차 갖지 못하였고, 오히려 두 아들의 이름으로 지파가 나뉘게 된다. 아버지 요셉은 생존의 사명 후에도 무명으로 있다가 조용히 구원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아버지 요셉이 성경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사건은 예수가 12살에 성전에 올라간 사건에서이다. 그 후 성경은 아버지 요셉에 대해 더이상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본다.
큰 사명과 무명의 사라짐이 이 시대 정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명자의 모습이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스스로 유명해지길 노력하다 오히려 오명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는 우리는 많이 본다.
본문에는 아기 예수를 두고 두 사람이 갈등한다. 한 사람은 헤롯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아들도 아닌, 예수와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 애굽으로 피난을 간다. 고대에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생명을 내어놓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아기 예수를 지키고자 하였다.
우리는 매일 이 두 가지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예수의 이름을 지우고 나의 이름을 새겨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때로 요셉과 같이 예수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우리는 이 두 길 가운데 매일 선다. 그때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 우리의 삶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사명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 요셉과 아리마대 요셉의 사명
아버지 요셉의 사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살펴볼 또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처음 나타난다. 성경은 아버지 요셉과 마찬가지를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9)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눅 23:50-51)
아버지 요셉과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하고 죽음을 정리한 사람들인데 성경은 이들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공통적으로 소개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요셉의 경우,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정혼자의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의 경우 자신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가 예수의 제자임을 드러날 것이고 그로 인해 큰 핍박과 손해를 겪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의 시신을 자신이 준비한 무덤에 안치시켰다. 아버지 요셉이 아기 예수의 탄생과 생존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였다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사명을 바라보며 우리를 이 시대의 요셉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주님께서 오셔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떠한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예수의 생명과 죽음을 선포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 두 요셉의 순종은 우리가 사명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맺음말
이러한 무명의 삶은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도전 받는다. 육체의 자랑으로는 유대인 중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우리가 자랑할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한 시대 주님의 손에 붙들려 멋지게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주를 위해 헌신하되, 주님보다 높아지지 않도록,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그러한 주님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