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은 자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은 자녀(20260503)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27:1-5)
모든 사람이 행복을 꿈꾼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말과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가정’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행복한 가정’이라는 표현은 다소 부담스럽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장 어울려야 하는 두 단어가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된 것은 가정 안에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도 무너졌다.
그래서 삶이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돌아가야 할 곳은 우리의 존재가 시작된 가정이다. 그 가정의 원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가정 안에 예비하신 행복을 찾아가려 한다.
행복 발전소, 가정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유지하게 하는 하나님의 질서가 시작된 곳이자, 온 세상을 향해 생명을 공급하는 영적 발전소 같은 곳이다. 가정에서 모든 세상의 질서가 시작되기에, 가정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세상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가족은 서로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한다. 부모가 살아가는 이유는 자식 때문이고, 자식이 살아갈 이유도 부모에게 있다.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에게 의미를 주는 그러한 존재로 하나님은 가족을 세워두셨다. 가족 안의 다양한 관계 중에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비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녀로 인해 행복한 가정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이고, 또 누군가의 부모이다. 여러분에게 자녀는 어떤 존재인가. 여러분은 부모님께 어떤 존재인가. 존재의 가치는 그 존재의 의미만큼 주어진다. 자녀가 여러분에게 얼마만큼 소중한지는 여러분이 그 자녀에게 얼마만큼의 삶의 의미를 두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인생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고 그 의미가 크면 클수록 여러분의 인생에서 자녀의 가치는 높아진다. 우리는 시편 127편을 통해서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자녀의 성경적 의미와 자녀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편 127편은 인생을 두 가지 단어로 요약한다. 먼저 ‘헛되다’이다. 시편 127편의 전반부인 1-2절은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인생이 ‘헛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후반부인 3-5절은 그렇게 헛된 인생이 ‘행복하다’(히브리어로 아쉐레)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헛됨과 행복, 이 두 가지 결과를 우리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헛된 인생이 일순간에 행복한 인생이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놀랍게도 시편 127편은 헛된 인생을 행복한 인생으로 바꾸는 행복의 통로가 ‘자녀’라고 말한다.
1) 헛된 인생: 가정, 성읍, 일상
시편 127편의 전반부는 많은 사람의 인생이 헛되다고 말한다. 1-2절은 세 가지 헛된 인생을 설명하는데, 히브리어 원문의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헛되도다 그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헛되도다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당신의 삶이여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이 시에는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전도서의 저자로 알려진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세 가지 헛된 수고를 이 시에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전도서에서의 ‘헛되도다’(히브리어로 헤벨)라는 단어와 시편 127편에서 나오는 ‘헛되도다’(히브리어로 샤베)라는 히브리어는 다르다. 시편 127편의 ‘헛되다’라는 의미는 정말 아무 소용없고 의미 없다는 뜻이기에 전도서보다 더 강한 헛됨을 나타낸다.
시편 127편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헛된 인생의 공통점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헛됨은 1절의 집을 세우는 데서 나타난다. 여기서 ‘집을 세운다’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문자 그대로 ‘건물인 집을 짓는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보다 적합한 의미는 가정의 토대가 되는 부부, 부모, 형제 사이의 관계와 가정의 생존과 관련된 토지 소산 등과 같은 경제적 활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형제와 자매 관계는 어느 시점에서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기에 헛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항상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모든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가정의 경제적 활동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헛되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재물을 모아 놓아도 아무런 유익이 없게 된다.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부부가 갈등하고 가족들이 다투게 되는, 재물이 화목을 파괴하는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두 번째 헛됨은 공동체를 지키는 수고이다. 고대 성읍은 주로 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확대된 가정이었다. 그렇기에 한 공동체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지키는 일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헛된 수고가 될 것이다.
우리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안전장치를 해 놓는다. 노후를 준비하기도 하고 건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세워 놓은 모든 안전장치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어느 순간 모두 무너지게 된다.
세 번째는 헛된 수고는 개인의 일상의 삶에서 나타난다. 한 사람이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자신이 수고한 소산을 먹는 정직한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인생은 헛된 인생이라고 고백한다. 시인은 하나님 없이 부지런함보다 하나님께서 재우시는 잠을 자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한다.
3) 행복한 인생: 자녀로 인한 행복
이렇게 개인적인 삶, 가정의 삶, 그리고 공동체의 삶에서 모든 것이 헛된 인생을 살아가던 인생에 커다란 삶의 변화가 다가온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자녀 때문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시인은 ‘보라’라고 말한다. 이는 주위를 환기시킬 때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헛된 인생에서 행복한 인생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길을 말하며 자녀를 언급한다.
우리는 자녀를 보통 ‘내 딸’, ‘내 아들’이라고 한다. 자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행복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3절에는 자녀에 대한 새로운 다른 해석이 등장한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이며, ‘여호와의 상급’이라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셨던 가나안 땅을 의미하고, ‘상급’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받는 복을 말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과 복이 우리 삶에 선물처럼 주어진 존재임을 말한다. 이것이 자녀가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다.
우리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자녀를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의 기업이며 나의 상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맘대로 소유하고 양육하고 기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인 기업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급이다. 이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자녀를 통해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자녀를 주셨을까? 왜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났는가? 우리 자녀들은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업과 상급으로 주어졌을까? 4-5절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27:4-5)
4-5절은 성경 속에서 자녀의 역할을 가장 선명한 비유로 말한다. 젊은 시절에 주신 자녀는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손에 있는 화살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5절은 병사의 손에 있는 이 화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성을 지키는 군사에게 높은 곳에서 낮의 곳의 적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화살이다.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하면 성밖에 아무리 적이 많더라도 두렵지 않다. 성경은 자녀가 부모에게 그런 존재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과 좌절을 경험할 때 자녀가 내 앞에 있다면 부모는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의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편 127편은 자녀를 두 가지 상황에서 비교한다. 1절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상황에서 내 자녀의 인생의 집을 지으려는 관계가 있고, 그 자녀를 나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여호와의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고백하며 자녀를 바라보는 관계가 있다. 자녀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자녀 앞에 ‘나의’라는 말 대신 ‘하나님의’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
그래서 자녀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이요, 여호와의 상급이라는 의미를 두어야 그 자녀가 여러분의 가정의 약속의 땅이 되고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화살이 된다.
만약 자녀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면 내가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내가 자녀를 통해 나의 꿈을 이루려고 하고 있지 않은지, 나의 부족함을 자녀를 통해 채우려고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라.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헛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맺음말
거울 안에는 내가 있다. 때로 낯선 모습이고 때로 익숙하다. 자녀는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아서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오른손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왼손을 든다. 우리가 자녀를 바라보고 한숨 짓고 실망하는 이유는 바로 나 닮은 모습과 나와 다른 모습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닮아서 화가 나고 때로는 닮지 않아서 분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를 통해 나를 보게 하신다. 나와 닮은 모습을 보면서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믿음의 기업을 주셨구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모습을 보고서는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넓혀가시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이고 상급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