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명 [오늘의 말씀] 2025년 07월 16일  인쇄하기인쇄하기

율법이 놓아 주어도 주인의 호의와 은총에 감화 받아 스스로 종 되기를 원하는 종이 있었습니다.

[ 성구 ]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신 15:16下-17)

[ 내용 ]


이스라엘의 노예에 관한 율법에는 안식년이 되면 해방시켜주라는 규례와 함께 그 노예가 해방되는 것을 원치 않으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이 자유로워지고 이제는 퇴직금도 받아 자신의 소유의 땅을 일구고, 사람다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왜 영원히 노예로 있으려는 자들이 있었을까요? 이 노예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신분의 자유나 몇 푼의 퇴직금이 아니고, 자신의 주인과 누렸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은혜로운 관계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관계 안에 있으면 자신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것, 매일 해가 뜨면 뙤약볕에 나가 월급도 받지 못하며 노동해야 하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노예에 걸 맞는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모두 스스로 종 되기를 자처한 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감수하더라도 인자한 주인과의 관계를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구약시대 율법의 조항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종 된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의 소중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소유라 여겼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일평생을 가난하게 살아도,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모든 것을 누리며 산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직후부터 하나님께서 적극적인 헌신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가라. 이제 네 죄가 사하여졌으니 평안히 돌아가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평안히 돌아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괘씸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오랜 시간 깊은 교제 가운데, 많은 신앙의 체험과 특별한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을 섬겨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주님! 우리가 받은 은혜와 당신과의 관계의 기쁨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유할 수 있으나 저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영원히 살겠습니다. 저는 주님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이런 고백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사명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묵상 ]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을 따라 해방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주인과 함께 있고 싶어 그 기회를 버리는 노예의 마음 중심에 타오르는 정서가 무엇이었는지를 말입니다. 차가운 율법이 통용되는 구약시대에도 이런 감동적인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었다면 그 어떤 드라마와도 비교될 수 없는 구속의 드라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안에서는 어떤 정서가 흘러야 할까요? 또,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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