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LIN SERMONS

설교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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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살아가는 지혜 설교자 : 김성진 목사 작성일 : 2024.02.1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3-14).


1. 인간의 한계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우리도 살아가고 있다. 영원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인류를 보셨고, 모든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지도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른다. 이러한 존재적 한계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다투어 이길 수 없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전 6:10).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이기고 싶어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만들기 바란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존재적 한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 한계 속에서 사는 지혜
죽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1-2).
전도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인생을 마치면 그 사람 이름 뒤에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것이 ‘좋은 이름’이다. 이에 비해 ‘좋은 기름’은 일평생 모아놓은 재산이다. 전도자는 일평생 모은 재산보다 좋은 이름, 명성이 더 낫다고 말한다. 그래서 태어난 날보다 죽는 날이 더 중요하다. 그날이 좋은 이름을 남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도 유익하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남아 있는 나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고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게 하는 실질적인 제안 두 가지를 준다.
첫째는 사람을 잘 사귀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전 7:5). 여기서 ‘노래’는 칭찬이다. 지혜로운 자의 책망이 우매한 자의 칭찬보다 인생에 훨씬 유익하다. 우매한 자의 칭찬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탐욕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칭찬을 들으면 더 큰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그 마음은 교만을 만들어내고, 교만은 거짓과 탐욕, 뇌물들을 바라게 한다. 끄들은 결국 그 사람을 망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매한 자들의 노래보다 지혜로운 자의 칭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둘째는 마음에 관해서다. 태어날 때보다 죽는 때가 더 나은 것처럼 일도 시작할 때보다 마칠 때가 더 중요하다. 일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참는 마음’이 필요하다. ‘참는 마음’은 ‘긴 마음’이다. 나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숨을 길게 하면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다. ‘교만한 마음’과 ‘급한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은 ‘높은 마음’이다.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자리보다 내 자리를 더 높게 생각하는 것이다. 교만한 마음은 급한 마음을 만들어낸다. 마음이 급한 이유는 나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간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급하게 된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한다. 호흡을 길게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루심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계를 지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3. 삶의 한계 속에서 찾는 의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우리는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펼 수 없다. 이것이 강한 자와 싸워 능히 이길 수 없다와 같은 의미다. 하나님과 대항하여 이길 수 없다면,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펼 수 없다면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우리가 할 것은, 형통한 날, 곧 행복한 날에는 그 행복을 누리고, 곤고한 날 곧, 불행한 날에는 나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뒤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인도해 오셨는지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려야 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말씀 적용
가장 뛰어난 지혜는 내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이다. 이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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