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5장
10절 예레미야의 괴로운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 11절로 대답하신 부분으로 이해되는데요 예례미야의 생애를 볼 때 11절 말씀과 좀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답변]
안녕하세요. 집사님!
예레미야의 10절의 괴로운 상황은 욥기 3장에서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예레미야의 좌절과 심연이 그에게 얼마나 괴로운지 우리는 더듬어 알 수 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삶을 지독한 역경과 고난에 두심으로 그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시며, 그의 말씀이 이스라엘 가운데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질문해주신 예레미야가 그러했고, 호세아가 그러했습니다. 집사님께서 질문해주신대로 11절을 보게 되면, 예레미야의 절망과 11절은 큰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레미야는 15:10절을 보게되면, 이스라엘 사이에서 자신을 '다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사람'으로도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예레미야는 당대 사상의 주류에 맞서 서 있는 자였습니다. 사회-정치적, 종교적으로 모든 층위에서 예레미야는 그 시대 이스라엘의 지배적 견해와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투는 자'로 불렸던 예레미야는 이 평판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온 공동체가 예레미야를 업신여기고 있었습니다.
먼저, 10절의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11절처럼 보이는 것이 개역개정판의 번역 문맥에 근접한 것은 사실이나, 11절은 예레미야에게 주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복해서 선포한 말씀을 다시 한번 소리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거는 이러합니다.
1. 10절에서 예레미야는 '온 땅에서 다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11절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왜 '다투는 자'가 되었는지 적실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재앙의 때와 곤경의 때에 원수를 네게 들이닥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4:11, 11장의 재앙 선포들, 4:31과 6:24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2. 11절의 대명사 '너'를 예레미야로 보는 것이 아
[답변]
댓글이 끊겨 이어 쓰겠습니다.
니라 11절의 대명사 '너'를 예레미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너'는 남성 단수인데, 예레미야서는 이스라엘이나 유다 전체를 한 사람에게 말하듯 '너'라고 부르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이 '너'를 예레미야로 읽으면 11절은 선지자를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이 되지만, 유다로 읽으면 백성을 향한 재앙의 선포가 됩니다. 그런데 11절에 나오는 '좋은 것', '재앙의 때', '곤경의 때'라는 말은 예레미야서에서 줄곧 백성을 향해 쓰이던 표현들입니다(14:11; 11:11-17; 4:31; 6:24).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듣는 '너'는 예레미야가 아니라 유다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11절은 선지자에게 주시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거듭 선포하게 하신 그 말씀을 여기서 다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답변 드리겠습니다. 집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의문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알고자 하는 열심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정진이 함께 나란히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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