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가죽옷으로 약속된 부부의 회복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14-21)
성경적 부부관계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관계는 ‘부부관계’이다. 부모와 자녀는 혈연으로 연결되었기에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본래는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부부는 ‘결혼 언약’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보다 귀한 존재가 되고,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결혼 생활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그 길은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 관계 안에서 갈등한다. 그러면 이렇게 하기도 힘들고, 하고 나서도 힘든 결혼을 왜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결혼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혼의 원형,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결혼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복을 주시기 위해 세우신 사명이 세 가지 명령어로 나타난다(창 1:27-28).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여기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결혼이 필요하다.
창세기 2장은 결혼을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해 놓으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 여기서 ‘돕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제르’인데 하나님처럼 남자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여자라는 것이다. 또한 여자의 존재도 남자가 있음으로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아담에게로 데려왔을 때 아담은 그녀를 ‘여자’라고 불렀다(창 2:23).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이솨’인데, 남자를 뜻하는 ‘이쉬’에 ‘~부터’, ‘~안으로’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아’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단어다.
‘남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는 ‘누군가가 존재하다’, ‘어떤 것이 존재하게 만들다’라는 동사에서 기인한 명사다. 그러니까 남자, 곧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을 세상에 의미 있게 존재케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그 남자에게서 또 다른 존재, 여자를 이끌어내신다. 그래서 여자는 존재론적으로 남자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남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죄의 형벌로 무너진 결혼
그런데 이렇게 복과 사명으로 주신 결혼이 짐이 될 때가 있다. 결혼이 힘든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죄로 인해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 어떻게 죄로 인하여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와 뱀을 심판하시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리신 형벌은 크게 두 가지다(창 3:14). 첫째, 배로 다니는 것이다. 배로 다닌다는 것을 패배를 의미한다. 이는 결국 사탄이 패배할 것임을 알려준다. 둘째, 흙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 그러니 이 형벌은 사탄이 죄악에 빠져 있는 사람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삼아,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자에게도 형벌을 내리신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 첫째, 해산의 고통이다. 임신의 기쁨이 고통으로 변하게 되었다. 둘째, 남편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이전처럼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결혼의 복은 두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 때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장 16절 후반절을 히브리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너(하와)의 남편은 너의 소유의 욕망이 되고, 너의 남편은 네 위에서 통치하려 할 것이다.”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느낀 오염된 시선으로 여자는 남편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을 소유하려 할 것이다. 남편도 더이상 아내를 보호하고 아내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왕이나 군대 장관이 부하를 다스리듯 힘으로 아내를 통치하려 할 것이다.
부부를 위한 하나님의 회복
하나님은 이러한 징벌 가운데서 회복을 약속하셨다. 그 두 가지 약속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와’의 이름을 바꾸신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창 3:20).
아담은 그의 아내를 ‘하와’로 부르며 그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내는 힘으로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케 할 동역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주셨다. 우리는 ‘가죽’이라는 재료에 집중하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옷’이라는 단어가 먼저 나온다. 그런데 이 ‘옷’이라는 단어가 특이하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세마포, 제사장의 외투, 요셉의 채색옷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주시면서 너희를 여전히 제사장처럼, 가장 사랑하는 아들처럼 여기고 있음을, 그리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맺는말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3).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복될 때 남편은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것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할 것이다. 이 관계가 창조 질서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연합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배려하라. 그것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