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고난이 사명으로 주어질 때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7-13)
시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 문화를 그 시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과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도는 시대의 흐름, 시대 정신을 쫓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대를 거스르고 앞서갈 수도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 시대 정치적 상황
예레미야 시대에는 큰 정치적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친애굽 정책과 끝까지 항전하자는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사명은 ‘애굽을 버리라’,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반시대적이고 반민족적인 이 말씀 때문에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활동하던 4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다.
시대를 거스르는 선지자의 사명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셨는데 하나님의 이 계획은 만세 전에 이루어졌다(렘 1:5).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은 다소 의외이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렘 1:6).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슬픔을 고백하였다. 이는 그가 받은 사명 때문이다. 그는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붕괴, 그리고 유다 백성들의 비참한 죽음을 선포해야 했다. 민족주의를 따르던 그때에 나라의 멸망을 받아들이라, 항복하라는 선포로 인해 일평생 치욕과 모욕을 당하였다(렘 20:8).
우리 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세상은 자기만족, 자아실현, 풍요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함께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롬 8:17). 그러면 하나님이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 목적은 무엇이고, 성도는 이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우리는 이것을 예레미야의 고난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예레미야의 고난
예레미야는 고난의 선지자였다. 그의 고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외적 고난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핍박과 사회적인 배척을 겪었다. 일평생 살해의 위협을 받았으며 매를 맞고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육체적 핍박과 함께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배척되고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반역자로 낙인찍혀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었고,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이러한 고난에 두셨는가.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겪는 외적 고난을 통해 앞으로 유다가 겪을 심판을 미리 보여주셨다. 너희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렇게 묶이고 매 맞고 갇히고 굶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족을 잃게 될 것이고 성전에서 더 이상 하나님께 제사할 수 없으며 결혼식에도 갈 수 없고,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고난 가운데 절망하지 말라. 목적 없는 고난은 없다. 고난 당하는 자가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나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나를 먼저 이 고난의 자리에 세우셨다.
다음으로 내적 고난이다. 선지자에게는 독특한 이중적 정체성이 있다. 선지자는 백성을 대표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다. 예레미야는 마음의 고통을 말할 때 일인칭을 사용한다.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예레미야인지 하나님인지 모호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인 열 명을 찾으면 소돔성을 구원하시겠다 하셨는데 예루살렘에는 더 큰 긍휼을 베풀어 의인 한 명을 찾으면 용서하겠다 하셨다(렘 5:1).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하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하였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고스란히 느꼈다(렘 20:9, 23:9).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도 아프다. 이 마음은 또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 내적 고난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더욱 눈물로 기도하게 한다.
맺는말
고난이 사명이라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 고난도 사용하신다. 고난 당하는 여러분을 하나님의 보여주는 말씀으로, 이 시대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으로 사용하신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마음의 고통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라.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 아픔을 품고 하나님 앞에 더욱 통곡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외적으로 당하는 고난도, 내적으로 당하는 아픔도 모두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능히 이겨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