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매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매(20251207)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19-26)
우리는 이번 주일을 창립기념주일로 지킨다. 창립 32주년을 맞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열린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신 놀라운 계획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살펴볼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다.
성경에서 안디옥 교회는 첫 번째 이방인 교회라는 상징성 외에,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신학자이며 선교사인 사도 바울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하여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다. 이렇듯 중요한 안디옥 교회를 살펴보면서 열린 교회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는 교회, 복음 사역자를 키워내는 교회, 세계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성경 속 안디옥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이라는 지역은 두 군데다. 하나는 본문에 등장하는 시리아에 있던 안디옥이다. 이곳은 튀르키예 남부 비옥한 평야 지역 오론테스라는 강가에 위치한 상업도시다. 다른 하나는 시리아 안디옥에서 북쪽으로 650km 떨어진 곳, 지금의 튀르키예 내륙 깊숙한 고산지역 비시다아 지방에 있던 군사 도시다. 바울은 이곳을 1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고(행 13장), 여기서 유대인들의 극렬한 저항과 박해를 받았다. 그때 바울은 더 이상 유대인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함으로 유대 선교에서 이방 선교로의 전환이 일어난 곳이다.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에 대해, 고대 문헌은 ‘신들의 거처’라고 명명했다. 이 도시가 이러한 별명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안디옥에 제우스, 아폴론, 포세이돈, 아도니스, 튀케 등과 같은 그리스 신들의 신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인정되었기에 유대인 회당도 있었고 유대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특성 외에 안디옥은 지중해와 평야 지대 사이에 위치하면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특별히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국제 무역이 활발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안디옥은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이렇게 돈이 많은 곳, 신들이 많은 도시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우리는 본문에서 어떻게 이러한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고 성장하였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사도행전 11장은 안디옥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원리를 전한다.
교회를 세우는 원리1: 환난과 핍박
첫 번째 원리는 환난과 핍박이다.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환난과 핍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을 19절과 20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 11:19-20).
이 구절에서 우리는 초대교회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된다. 바로 스데반의 순교다. 스데반의 순교는 성경 역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하나는, 바울이라는 사람을 성경 역사에 등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중해 연안 도시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한 사람의 순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말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그 명령이 실행되는 과정에 있던 것이 바울의 핍박이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3-4).
그래서 사도행전 11장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바울에 의해 진행된 박해를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동하였다. 복음도 그들과 함께 전파되었다.
이방 교회가 세워진 중요한 계기는 스데반의 순교와 그 순교로 인한 핍박과 박해 때문이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박해와 환난을 자양분 삼아 자라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을 만나면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고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교회를 세우는 원리2: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매
두 번째 교회 원리는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21).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령의 임재가 있을 때 수천 명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박해를 피해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주님의 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교회의 부흥은 항상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을 때 경험하는 은혜다. 그래서 이사야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회복시키는 모습을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사 66:13-14).
교회는 주님의 손이 나타나고, 주님의 일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손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을 때 여러분의 인생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회를 세우는 원리3: 성도의 연합
세 번째 원리는 성도의 연합이다.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낸다.
바나바의 이름의 의미는 ‘위로의 아들’로, 그의 본명은 요셉이다. 그는 구브로 출신 유대인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그의 밭을 팔아 온전하게 바친 신실한 제자였다. 성경은 그의 성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4).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바나바의 또다른 공헌은 바울을 안디옥 교회에 초청하여 그와 함께 사역했다는 것이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다메섹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나고 완전히 변화한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사도들을 만나게 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 그리고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와 함께 목회하였다. 바나바와 바울은 일 년간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들의 목양의 결과로 안디옥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26절의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크레마티사이’는 ‘누구의 이름으로 사무를 처리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안디옥 교인들은 그들의 삶의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당하며 살았다는 의미가 된다.
바나바와 바울의 연합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만약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자신의 이름과 명예만 구했다면 그의 이름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의 이름이 높아지면 복음은 희미해진다. 교회에서 성도가 연합하여 섬길 때 예수의 이름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맺는말
주님은 환난과 핍박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주님의 손이 그 교회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성도의 연합으로 그 백성들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 온전한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다. 이것이 또한 열린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핍박과 고난을 주님의 은혜로 이겨내고, 주님의 일하심이 우리와 함께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성도가 함께 연합함으로 열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시대에 세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