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예수는 흥하고 우리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수는 흥하고 우리는 쇠하여야 하리라(20260104)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2-30)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준다. 성경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역사적 상황과 다양한 삶의 형편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였는지를 보여주기에 그들의 인생을 살피면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배울 수 있다.
신약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사람은 세례 요한이다. 성경은 세례 요한은 출생과 죽음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의 생애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 준 이름인데, 그의 사명을 담고 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요하난’으로 읽는다. ‘요하난’은 ‘여호와’를 의미하는 ‘요’와 ‘은혜를 베풀다’라는 의미를 갖는 ‘하난’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되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요한’이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은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요한의 사명을 잘 보여준다.
요한의 생애를 대략적으로 살피면 이렇다. 늦은 나이까지 자식이 없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빈 들, 광야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양육을 받고 자랐다. 성경은 그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매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매우 초라한 모습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때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선포로 그의 사역을 시작한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세례 요한’이라 불리게 된다. 그가 사역을 한 기간은 일 년 정도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의 사역을 하다 헤롯 안디바가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책망하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인생 어디에서 성공이나 화려함은 없었다. 공생애 기간도 1년 남짓이고 그 기간에 어떠한 기적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되었다. 성경은 그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기록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례 요한의 삶을 바라보며 한 가지 의문이 갖게 된다. 좋은 학파 출신도 아니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지도 않은 선지자,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개하라고만 외치며 세례만 준 사람,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소녀의 춤값으로 목이 잘리게 된 그를 성경은 왜 중요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가.
세례 요한의 구속사적 역할
세례 요한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는 신약의 사복음서 모두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에 대한 강조점은 각기 다르다.
유대인을 독자로 한 마태복음은 세례 요한을 구약의 말리기서, 이사야서가 예언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 그린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도 요한을 향해 그가 약속된 엘리야라고 하신다. 마태는 독자들로 하여금 세례 요한의 중요성을 언약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 것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
이와 대조적으로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을 구속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속사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빛내는 증인으로 그린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요 1:6-8)
요한복음 세례 요한의 출생이나 회개의 세례, 설교 사역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선포하는 목소리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한의 증인된 삶의 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요 10:41-42). 여기서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에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우리는 복음서의 기록을 통해 세례 요한이 갖는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신약의 사무엘
세례 요한이 구속사에서 갖는 역할 중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요한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세움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구약에서는 사무엘,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탄생과 성장, 역할은 거의 동일하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가정을 떠나 성전, 혹은 광야에서 성장하였다. 사무엘은 400년 사사시대의 문을 닫고 사울과 다윗이라는 왕을 세워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준비하였고, 세례 요한은 중간기 400년을 마치고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울 준비를 하였다. 이런 점에서 세례 요한의 가장 큰 역할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예수를 왕으로 세워 무너진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사명이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을 통해 준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이 선포에 그 어떤 기적보다 더 놀라운 능력이 있다.
2) 이 땅에서 가장 큰 자,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이 땅에서는 가장 큰 자이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내린 평가에서 드러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 11:11).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는 표현은 요한의 생애나 사역을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고 하나 그는 기적의 선지자 엘리야가 행한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았다. 모세와 같이 유창한 구원사적 설교도 하지 않았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다 헤롯에게 잡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큰 자라고 하신 이유는 많은 선지자와 율법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든 예언의 마지막에 요한이 있고 요한은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진 사람이 요한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이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 1:32-34).
우리는 여기서 우리 삶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 가운데 실현되는 것을 체험한 자이다. 하나님의 지식이 나의 삶에 들어와, 나의 인생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의 전인격으로 경험하여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많은 자, 이 사람이 이 땅에서 가장 큰 자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자, 약속의 말씀이 자신의 인생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자,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큰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가리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하신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자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되는 비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그로 인해 이 땅의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음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였기에 그 시점에서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를 믿고 확증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이다.
우리와 구약의 성도들간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는 그림자와 실체의 차이만큼 크다. 구약의 선지자와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의 믿음으로 천국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신 구원을 확증함으로 천국에 간다. 그렇기에 우리가 구약의 성도들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아는 지식이 더 크고 분명하다. 그렇기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은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에 이르는 모든 성도보다 작은 자이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을 본다. 우리가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 쥐려고 하고, 얻으려고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그의 삶 가운데 선명한 자가 이 땅에서 큰 자이고, 십자가의 복음의 역사적 사실을 믿고 천국에 이르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신다.
3)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삶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천사를 통해 수태 고지된 점, 성장의 모습, 그리고 사역에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항상 비교되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그 시대의 라이벌 관계였다.
요한복음 3장에서도 예수님과 요한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전에는 요한에게 몰렸던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 3:26).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관계를 경쟁 관계로 보던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가자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구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지켰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요 3:28).
요한은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선지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러한 부정은 사명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야 할 사람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요 1:19-21).
요한의 공생애는 1년 정도 되는 세월이었고 그의 죽음은 기적 같은 출생에 비해 매우 비참하다. 어린 소녀의 춤값으로 머리가 잘리게 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영향력은 강하게 담았다. 이는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는 화살표로 남아, 예수의 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 앞에서 자신을 끝까지 부정하고 예수님을 높였기 때문이다. 다음 성경 구절은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드러낸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러한 요한의 철저한 사명 의식과 자기 부정이 있었기에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삶을 산 사람이 되었다.
맺음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던 세례 요한의 사명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에게는 다시 오실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예비할 사명이 주어졌다. 세례 요한과 같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려면 우리도 자기를 날마다 부인해야 한다. 길을 예비하는 자가 주인공이 되려 하고, 소리가 외치는 자가 되려고 하면 하나님 나라는 혼란과 분열을 겪게 된다. 주님이 부르신 곳에서 겸손함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이 시대의 세례 요한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