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20260111)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26-38)
마리아에 대한 세 가지 해석
성경 속 인물 가운데 가장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인물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에 대해서는 잘 설교되지 않는다. 각 교파, 교단별로 마리아를 어떻게 여기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를 높이는 입장(카톨릭, 정교회)
먼저 마리아를 숭배하는 입장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마리아를 높이며 숭배하는데 마리아에 대한 이들의 교리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다. 둘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 상태였다. 셋째, 마리아는 그의 원죄가 사하심을 받았기에 원죄가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넷째, 마리아는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승천하였다.
이 네 가지 교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가톨릭 종교회의나 교황에 의해 정해진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리아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성모에게 기도하면 성모가 그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한다는 것이다.
2) 마리아를 낮추는 입장(근본주의, 자유주의)
이와 반대로 마리아를 낮게 보는 입장도 있다. 근본주의는 마리아는 그저 하나님이 사용한 도구에 불과한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여인이라고 폄하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마리아를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적 인물이기에 역사성이 없다며 마리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
3) 신앙의 모범을 보인 인물(개혁주의, 칼빈)
이러한 양극단에서 가장 균형 있게 마리아를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개혁주의자들이다. 특히 칼빈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이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면 우리는 마리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성경은 분명하게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한다.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살펴보며 그녀가 수많은 고난 속에서 어떻게 은혜에 합당한 자로 살아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마리아의 인생
먼저 마리아의 인생을 살펴보자. ‘마리아’라는 이름이 무슨 의미이겟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이 이름이 히브리어 ‘미리암’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다. ‘미리암’이라는 이름의 근거가 되는 히브리어는 ‘마르’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쓰다’이다.
마리아의 이름에는 ‘쓰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인생이 그녀의 이름처럼 쓰디쓴 고난의 길이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1) 처녀가 결혼 전에 아기를 잉태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는 이미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다. 정혼은 하였으나 아직 합법적인 부부관계가 아니었기에 결혼 전에 여자가 아이를 가진 사건은 당시 유대법에 따라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심각한 일이었다. 만일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이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말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정혼자 요셉에게도 버림받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사라진 남편 요셉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이 12세 되어 성전에 올라갔을 때 이후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였을 때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이는 아버지 요셉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마리아에게는 예수 외에 적어도 4명의 아들, 그리고 2명의 딸이 더 있었다. 남편 요셉의 부재 속에서 마리아 홀로 아이들을 양육했을 것이다. 그녀가 살았던 나사렛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가난한 동네였음을 감안하면 마리아의 인생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3) 아들 예수의 죽음
그리고 마리아는 자기의 아들 예수가 못 박혀 죽는 것을 어머니로서 바라보아야 했다. 아무리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신 아들이라고 해도, 아들이 고통 가운데 죽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마리아에게 찾아온 예수는 복이었나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에는 다섯 명의 여인이 나온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모압 여인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다. 이 여인들 중 2명은 이방 여인이었고, 2명은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아이를 낳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한 여인은 결혼 전에 임신하였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록한 거룩한 족보에 등장하는 이 다섯 명의 여인은 모두 사회적,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족보에 왜 이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포함시켰는가. 그것도 모자라 이들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하였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이방인 모두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어떤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살아가는 소망 없는 모든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성은 소망 없는 이방인들에게도, 그리고 매우 심각한 죄를 저지른 죄인들에까지 이른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고난의 인생에서 은혜의 인생으로
마리아는 이렇게 쓰디쓴 인생을 살았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마리아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마리아의 삶을 통해 은혜를 입은 자가 어떻게 믿음으로 은혜에 반응하며 살았는지를 배우려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처녀가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진 것은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큰 형벌에 처해질 일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마리아의 잉태는 모든 이의 높음을 받고 존경받는 일로 전환되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후 그의 사촌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마리아에게 전한 구절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 1:41-42)
우리가 마리아의 인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갑자기 찾아온 아기 예수의 잉태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다. 분명히 마리아는 자신의 임신이 사회적, 종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망이었다.
하나님의 천사는 마리아에게 두 번이나 은혜를 받은 자라고 부른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눅 1:28-30).
아이를 잉태할 것을 예고한 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마리아는 이렇게 답한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그리고 가브리엘은 이렇게 답한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헬라어 성경 원문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말씀으로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기록한다. 천사의 답을 들은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한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8).
마리아는 자신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다. 이는 불순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하심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천사는 이러한 마리아의 질문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고 답한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으나 그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이제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고백한다. 마리아의 이러한 믿음은 그녀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 후 하나님께 드린 찬양에서도 드러난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눅 1:46-50).
마리아는 비천하였던 자신의 인생이 예수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고 복이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마리아는 평생 이 마음으로 살았다. 자신의 삶 속에 일어나는 마라와 같은 쓴 일을 경험하면서도 오직 주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낸 것이다.
마리아의 고난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25).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마리아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함이 없다는 말씀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자신을 통해 태어난 자가 큰 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고, 다윗의 왕위를 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끝까지 붙들었다.
말씀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맺음말
마리아의 삶은 그녀의 이름처럼 쓴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통해 성취되고 있음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를 낳은 후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 모든 인생의 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천사가 준 이 한마디 말씀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복은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성도가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일에는 많은 헌신과 손해가 뒤따른다. 그러나 예수를 우리 삶에 모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성취되어진다. 나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고백으로 만나는 일들 가운데 승리하며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