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어리석은 지혜자의 상처를 주는 충고
어리석인 지혜자의 상처를 주는 충고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욥 4:1-11)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을 꼽으라면 3장이다. 3장에서 욥은 자신이 태어난 생일과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한탄한다. 만일 이러한 욥의 한탄이 없었다면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도(4-27장), 그리고 그 대화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독백들도 없었을 것이다(29-41장).
이제 본격적으로 욥의 한탄으로 시작된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를 살펴보자.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4장에서 27장에 이르는데, 욥기에서 60% 이상의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대화의 주된 내용은 욥이 당한 고난의 원인에 대해 논쟁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위로자요, 친구였으나 점차 관계가 파괴되어 후에는 서로를 저주하는 원수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기에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무너졌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엘리바스의 첫 번째 말(4-5장)
먼저 욥과 엘리바스의 대화다. 엘리바스가 입을 열게 된 것은 3장에서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기 때문이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욥 4:1).
성경은 ‘말하다’에 해당하는 용어를 두 번 사용하는데, ‘대답하여’는 엘리바스가 욥의 말에 응답하고 있다는 표현이고, ‘이르되’는 그 응답을 이렇게 말하였다는 의미다. 이렇게 시작된 엘리바스의 첫 대화는 4-5장에 걸쳐 아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엘리바스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말을 한 사람이었기에 아마 가장 연장자였을 것이다. 그의 말은 신학적이며 또한 인생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말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의 말을 살펴보면 그가 욥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지 알 수 있다.
1) 도입부: 위로의 말(4:1-6)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칭찬과 위로로 그의 말을 시작한다.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욥 4:3-4).
이러한 부드러운 말은 곧 차가운 비수가 되어 욥의 가슴에 꽂힌다.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욥 4:5).
엘리바스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전에 네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그렇게 잘 위로하고 도와주더니 정작 네가 고난 당하니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는 것이다.
2) 문제 제기: 인과응보적 견해(4:7-11)
이렇게 시작된 엘리바스의 말은 욥의 고난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발전한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7-8).
세 친구가 욥의 고난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은 응과응보의 신학이다. 7절은 이러한 신학을 잘 요약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 중에 끊어진 사람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이는 욥의 소유가 끊어지고 자녀가 죽음에 이르는 것, 아내가 그를 저주하고 떠난 것 등 이 모든 고난은 욥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에 나타나는 엘리바스의 모든 논쟁은 이 두 구절을 토대로 한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악인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즉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엘리바스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제시한다.
3) 증거제시: 환상을 통한 증거(4:12-21)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의 원인이 그의 죄 때문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의 환상을 증거로 제시한다.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 욥을 설득하려는 것이다.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욥 4:15-16).
엘리바스는 자신이 본 환상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그런데 그가 진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한 인과응보의 신학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욥 4:17).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였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의하고 더럽다는 것이냐고 엘리바스는 반문한다. 하나님은 너보다 훨씬 의롭고 깨끗하신 분이시니 너는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욥이 회개하지 않자 엘리바스는 한 번 더 그를 코너로 몰고 간다.
4) 인간의 현실: 응답할 자가 없다(5:1-7)
지속된 설득에도 욥이 자신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지 않자 엘리바스의 말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는 욥을 향해 분노하기 시작한다.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욥 5:1-5).
너의 꼴을 보라는 것이다. 하늘도 돕지 않고 사람들도 떠나고 자녀들도 죽임을 당한 네 처지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욥이 고난당할 때 하늘의 하나님도 이 땅의 어떤 사람도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한다. 그는 욥을 막다른 골목에 세우고 그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비관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몰아세운다.
5) 해결책 제시: 하나님을 찾으라(5:8-16)
엘리바스가 이렇게까지 욥을 몰아붙이는 것은 자신이 제시하는 마지막 해결책을 욥이 수긍하며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 5:8-9),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욥 5:15-16).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그 앞에는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너의 숨겨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가난한 자도 부요하게 하시고, 죄인도 회복하여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한다.
6) 결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5:17-27)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욥이 이처럼 비참한 고난을 당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고백을 유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징계를 복과 연결시킨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 5:17).
그리고 하나님께로 왜 돌아가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성품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엘리바스의 신학적인 진술은 너무도 옳은 말이라서 허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욥 5:18-20).
이후 엘리바스는 모든 성도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한다.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욥 5:21-26).
21-26절의 엘리바스의 말 가운데 여러분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바스가 원하는 것은 이 모든 복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 당장 욥은 자신이 당한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숨겨진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것이다.
엘리바스를 책망하신 하나님
자신의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엘리바스는 종교적 체험인 환상을 증거로 제시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설명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 욥을 하늘의 하나님도 이 땅의 어떤 사람도 도울 수 없다는 것으로 욥은 처절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너라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리라’고 마지막 한 방을 날린 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리라 설득한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말 중에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3장에 기록된 욥의 저주나 한탄보다 훨씬더 은혜로운 말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된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하나님은 구구절절 모두 맞는 엘리바스의 말을 향해 분노하셨다. 이는 말 자체는 아무리 옳아도 상황에 적합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욥도 엘리바스의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반응한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욥 6:25-27).
무엇에 팔았다는 것인가. 자신이 주장하는 신학, 자신이 지닌 신념, 자신이 가진 지식에 친구를 판 것이다.
맺음말
엘리바스의 말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고난 당하는 자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부족하였다. 바울은 이 긍휼의 마음을 이렇게 권면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5-16).
주님도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셨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1-32).
그러나 누군가 고난당하는 자가 있다면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의 옆을 지켜주라. 이것이 가장 큰 위로이자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