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보이지 않으나 바라보시는 하나님
보이지 않으나 바라보시는 하나님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 23:8-12)
욥기 22장: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
오늘은 욥과 세 친구들의 세 번째 대화 사이클에서 엘리바스와 욥의 대화를 살펴보자. 뛰어난 언변가인 엘리바스는 욥을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함께 사용한다.
1) 욥을 향한 협박(1-20절)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은 욥의 죄악을 열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 22:5).
이렇게 시작된 욥의 죄악에 대한 고발은 사람을 향해 저지른 죄에 대한 고발로 이어진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욥 22:6-9).
이러한 엘리바스의 고발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것은 그가 이미 욥에게 한 말을 통해 증명된다.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욥 4:3-5).
이러한 엘리바스의 고발은 없는 죄를 만들어 욥을 정죄하고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21절부터 욥을 본격적으로 회유하기 시작한다.
2) 욥을 향한 회유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인 22장 21-30절은 욥기 가운데 가장 많이 설교 되는 본문이다. 그런데 설교자들은 이 본문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한 것인지는 살피고 성도들을 격려하는 데 잘못 사용한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욥 22:27-30),
이 부분은 결코 성도들을 향한 신앙의 권면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이 말은 욥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을 통한 회유, 거짓된 회개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엘리바스의 마지막 말은 욥을 향한 거짓 고발과 회유로 마친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마지막 항변(23-24장)
욥은 23-24장에서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응답한다. 그런데 정작 욥의 말은 자신을 무고하게 정죄하고 회유하려는 엘리바스나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께로 향한다. 그는 자신의 고난의 문제는 더 이상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1) 보이지 않는 하나님
욥이 고난 가운데 가장 괴로웠던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욥 23:2-5).
고난 속에 부재하시는 하나님을 찾고자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욥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고난을 경험해 본 성도들은 욥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것이다. 당하는 고난 자체도 아프지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고난 속에서 직면하는 하나님의 침묵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 무너지게 된다.
욥도 자신의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하나님의 부재중에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고난 당하는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내가 가는 길’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길을 말한다. 이 고난의 길 속에서 욥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마음이 바뀌니 고난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에는 이 고난이 너무 억울한 핍박이고 학대라고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이 고난 안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순금과 같이 온전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마음을 바꾸고 나니 고난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 23:11-12).
마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변하였다. 하나님은 뜻을 정하시면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자신에게 작정하신 것을 끝까지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이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욥 23:13-14).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무언가를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절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의 길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나의 인생길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게 할 것이다. 그 믿음이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신앙을 바꾸는 것이다.
2)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을 향한 욥의 두 번째 탄식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욥 24:1).
고난 중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고난이 언제 오며, 언제 마칠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욥에게도 이 고난이 언제 그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가장 힘들게 하였다. 욥은 고난 당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지연된 회복의 시간을 원망하였다.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욥 24:12).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알려지지 않는 시간 안에서 고난을 이겨나가는 법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실현되지 않을 것 같은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회복의 때가 하나님의 시간 속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자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욥 24:22-25).
욥은 자신이 계획한 시간 안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그는 괴로웠다. 그러나 내 시간에 하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내가 인내함으로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난이 끝날 시간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바라보심은 그냥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향해 바라보신다. 이 믿음 속에서 욥은 절망에서 벗어나 소망을 갖게 되었다.
맺음말
욥은 더 이상 자신의 고난을 사람들과의 관계나 사람들과의 대화로 해결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의 하나님의 부재와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시간의 한계를 믿음으로 극복하는 지혜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자가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도록 하셨다. 내가 예측할 수 없을 때 그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 이것이 순금과 같은 믿음이다.